자료실

가야컨설팅홈페이지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역동향정보

[철원] 철원군 장기발전계획

  • 가야컨설팅
  • 2006-07-06 08:45:01
  • hit3820


【철원=뉴시스】

강원 철원이 플라즈마 산업과 연계 가공시설을 완비한 고품질 인삼생산 단지로 집중육성 된다.

또 비무장지대 인근 근남면, 김화읍, 서면 일대 농가를 중심으로 토마토, 오이, 파프리카 등을 재배 생산하는 DMZ 청정 원예 단지로 조성된다.

특히 동송읍 학저수지 주변에는 두루미 생태 관광특구를 조성, 집중 개발이 이뤄진다.

철원군은 28일 오후 2시 군청 대회의실에서 철원군의회 의원, 기관.사회단체장, 이장 등 1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철원군 지역혁신발전 5개년 계획 수립 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개최한다.

철원군이 지역발전 역량을 창출, 활용, 확산시키기 위한 정책방향과 지침을 설정하여 경제 활성화를 유도하고, 도 및 중앙정부의 정책 준거로 활용토록 하기 위해 강원발전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 이날 최종보고회를 갖게 됐다.

이날 보고회는 강원발전연구원 선임연구원 조계근 박사의 발표로 진행되며 철원을 국토중앙지대 산업.역사.문화 도시로서 지역특성화 산업, 지역전략산업, 지역혁신역량강화 분야로 나눠 개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역특성화 산업으로 △청정육 육성 △인삼산업 육성 △DMZ 청정원예단지 조성 △지역특산물 가공단지 조성 △유기농 자연체험마을 육성 △두루미 생태관광특구 조성 등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지역전략산업으로는 △바이오 에너지 산업 △바이오 에너지 산업 △플라즈마 산업 △역사·문화·자연체험 관광 산업 △평화산업단지 경제특구 조성 △농특산물 특성화사업 등을 집중육성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또한 지역혁신역량강화 분야로 △지역사회내 인재 발굴 및 육성 △전략산업 연계형 과학기술 혁신역량 강화 △농축산업 혁신역량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됐다.

철원군은 이날 보고회를 통해 주민의견을 수렵한 후 보완수정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한 후 앞으로 철원군의 장기 발전 계획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이주섭기자 Leejs@newsis.com
-----------------------------------------------------------------------------

강원의 숨결](81)철원군 갈말읍 정연리
[강원일보 2006-07-06 00:03]

정연리....철원평야의 맛이 시작되는 땅
--------------------------------------

 민통선 북방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亭淵里)는 철원군 107개리 가운데 유일한 평강땅으로 잘 알려진 마을이다.

 비무장지대(DMZ) 인근 생태환경의 보고이기도 한 이 마을은 철원군청 소재지에서 동북방 22㎞지점, 차량으로 30분거리에 위치해 있다.

 한탄강 상류유역을 경계로 동북방향에 근북면 유곡리와 동쪽으로는 김화읍 도창리, 동남쪽으로 갈말읍 토성리, 남쪽은 동송읍 이길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평강면의 압동리와 선변리를 접하고 있다. 또 북쪽 턱앞에는 높이 200미터 가량의 소산맥에 연한 휴전선 남방한계선이 가로놓여 경계를 이루고 있는 중부전선 최전방마을이다.

 6.25전까지 평강군 남면 정연리이었던 이 마을은 1954년 10월21일 수복지구 임시조치법에 의해 행정권이 철원군에 이양된후 1972년 갈말읍에 편입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연리는 마을을 중심으로 남과 북은 낮으막한 산과 강을 마주하는 배산임수형 지형으로 오랜 옛날부터 농사를 지으며 살기 좋은 마을로도 전해지고 있다.

 이 마을의 정연(亭淵)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조선시대 관찰사를 지낸 월담(月潭) 황근중(黃謹中·1560∼1633)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창원 황씨는 고려시대 철원과 평강 지역에 세거하며 번창해온 문중이었으나 후손인 조선의 문신 월담(月潭)으로 인해 화려한 명성을 얻게 됐다.

 월담은 선조 22년(1589) 생원시에 장원급제한 뒤 임진왜란 당시 뛰어난 업무 처리로 승진을 거듭해 전라감사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당시 광해군의 난정과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관리의 신분으로 안위하며 봉록을 받는다는 것을 결코 용납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평강 땅이었던 이곳에 정착, 한탄강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의 8칸 모의 정자를 새로 세우고 `창랑정'(滄浪亭)이라 이름지은후 청아한 생활로 여생을 보내게 된다.

 이후 이곳은 금강산으로 접어드는 길목이라는 입지 때문에 문인들이 운집하는 명소가 되었으며 `정연' 또는 `정자연'(亭子淵)'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됐다.

 창랑정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군대에 의해 전소되고 이어 월담의 후손 황손에 의해 재건되기도 했으나 6·25 전쟁당시 이곳이 철의 삼각지대의 정 중앙에 놓인 운명 때문에 포화 속에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됐다.

 지금도 이 마을 주변의 한탄강 등 곳곳에는 월담이 바위에 새겨놓았다는 바둑바위를 비롯 산록골, 묵곡, 풍혈, 제당골, 육모정 등 독바위소 등 토속적인 체취가 물씬 풍기는 옛지명이 무수하다.

 또 마을 인근 한탄강변에는 일제시대인 1921년부터 철원역~내금강을 오가던 금강산전철의 흔적인 `끊어진 철교 금강산 90km'라는 문구와 함께 정연역의 콘크리트 잔해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애잔하게 하고 있다.

 현재 97가구주민들이 쌀농사를 주업으로 생활하고 있는 이 마을도 인근 민통선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굴곡으로 점철된 현대사를 거쳐오면서 많은 아픔을 지니고 있다.

 이 마을은 전체주민 가운데 98%가량이 평강출신 실향민들이다.

 평강출신 주민들이 많은 것은 6.25전쟁이후 불가피하게 고향마을을 떠난 주민들이 대부분이 남쪽으로 30여리 거리인 갈말읍 토성리, 지경리 등지에 흩어져 살아오며 마을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기 때문이다.

 지난 1972년 정부의 이주정책으로 120가구주민들이 20여년만에 고향마을에 돌아왔으나 교통불편과 협소한 주거환경, 황무지로 변해버린 논밭을 가꾸느라 밤과 낮을 일해야 하는 등 숱한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잘살아보겠다는 단합된 마음으로 서로 의지하며 뭉쳐 옥토로 만드는 등 30여년이 지난 현재 부자마을로 탈바꿈하고 있다.

 정연리일대 농경지가 철원일대에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한 것은 주민들의 노력이 가장 크지만 길이 136 km 한탄강의 최상류지라는 지리적 여건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마을 인근 평강에 발원한 한탄강은 김화, 철원, 포천, 연천을 지나 연천군 미탄면, 전곡면의 경계에서 임진강까지 흘러들어 강원도 제일의 곡창인 철원평의 젖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휴전이후 40여년간 인적이 끊긴 비무장지대로 흘러나오는 오염되지 않은 맑은물, 신선한 공기 등도 이 마을의 자랑거리이다.

 이 때문에 정연리주민들은 최근 1가구당 평균 2만여평의 쌀농사를 짓고 있으며 3~4년전 처음 시작한 시설채소재배농가가 20여가구에 이를 만큼 선진농업을 일궈가며 부농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또 우렁이농법 등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농가들도 20여가구 10만여평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1980년 같은 마을에 살던 60여가구가 인근 동송읍 이길리로 분가하는가 하면 평강 유일의 학교라는 상징성을 가졌던 정연초교(현 강원학생 통일교육수련원) 가 학생수 감소로 폐교돼야 하는 아쉬움을 맛보기도 했다.

 특히 마을주민들에게 마냥 평화로와 보이기만 했던 이 마을에 닥친 가장 큰 시련은 지난 96년 홍수피해로 기억된다.

 당시 대부분의 가옥이 침수되고 사육하던 한우 500여마리와 논밭 수만평이 집중호우에 휩쓸려 나가면서 주민들은 50억여원상당의 재산피해를 입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설상가상 마을이 침수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한 주민들간 반목과 알력은 주민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수해직후 신 정연리로 불리는 1, 2반 55가구주민들이 200m거리의 인근 정연벌(평강군 상진리)로 이주한뒤 이주하지 않은 3반 42가구 주민들과 마을문제에 대해 사사건건 갈등을 빚으면서 마찰이 야기된 것이다.

 3반 주민들은 급기야 지난 2003년 1, 2반 일부 주민들이 3반 주민을 무시한다는 등의 이유로 마을을 2개리로 분리해 달라는 건의문을 철원군에 제출했으며 1, 2반주민들은 “투표까지 마치고 이주를 하지 않은 것은 그쪽 책임”이라고 반박하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더욱이 99년 홍수피해가 재차 발생, 일부 주민들은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보조금을 갚느라 현재까지 어려움을 겪는 요인이 되고 있다.

 다행히 이러한 반목과 불신은 주민들이 수년동안 화합과 단결을 위한 반상회와 척사대회, 체육대회 , 마을잔치 등을 수시로 개최하고 합심하는 모습을 모이면서 오랜 갈등을 훌훌 털고 있다.

 마을주민들이 화합을 이루게 된 바탕은 임남호 전이장과 김한태 현이장 등 젊은층의 노력과 청년회 부녀회 노인회 적십자사 정연봉사단원 등 남녀노소 주민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애쓴 결과라는 후문이다.

 또 주민들은 지난 1월 지역주둔 3사단 22연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친선체육대회 등 다양한 교류활동을 벌이며 돈독한 우의를 과시하고 있다.

 주민들은 최전방 주민들의 가장 큰 고충중 하나가 TV난시청지역일뿐아니라 여가시설이 전무하다는 점을 들어 피로회복실설치와 체육공원조성 등 작지만 다양한 종류의 여가시설확충을 바라고 있다.

 수해발생 이후 마을앞 한탄강은 유실된 미확인 폭발물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군부대가 출입을 통제하고 있을뿐더러 뒷산은 남방한계선 철책이 가로놓여 갈 곳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일부 젊은이들이 스트레스해소를 위해 차량으로 30~40분거리인 동송읍 및 갈말읍, 서면일대 소재지로 나가야 하는 등 손실이 큰 만큼 여가선용 대책마련을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이 마을 주민들은 한차원 높은 소득증대방안을 찾느라 부단히 애쓰고 있다.

 비무장지대에 인접한 청정마을환경을 활용, 고소득 농특산물을 개발하고 민북 관광체험마을로 탈바꿈 시켜야 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마을주변의 안보관광도로 확충 등 교통여건이 크게 개선된 것도 이같은 인식전환에 불을 당기고 있다.

 안보관광도로는 강원도와 철원군이 지난 2002년부터 모두 20억원을 들여 정연리~멸공OP를 잇는 1㎞구간및 정연리~생창리를 연결하는 1㎞구간 도로를 개설하고 멸공OP내 주차장, 화장실 신축, 김화군민 망향제 팔각정정비사업 등을 벌였다.

 또 연차적으로 도로 미개설지역인 갈말읍 정연리~근북면 유곡리 5㎞구간과 김화읍 생창리~근남면 마현리, 유곡리~생창리구간 등의 도로가 개설될 예정이어서 체험관광지 조성을 통한 관광소득화 방안을 꾀하고 있다. <鐵原=李正國기자·jklee@kwnews.co.kr>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작성

열기 닫기

댓글작성